‘소양정 회고’의 낙랑 춘천 도읍설

작성자
박 의서
작성일
2024-10-02 07:51
조회
189
춘천순환도로 북쪽 끝 맥국교를 건너면 곧 바로 신북로로 이어진다. 그리고 몇 해 전 이 신북로에 처음 들어서면서 마주한 너른 들녘과 이 들녘을 둘러싼 마적산, 경운산 그리고 수리봉을 바라보면서, 필자는 이 지역이 탁월한 삶의 터전임은 물론 손색없는 왕 터였을 거라는 짜릿한 전율에 사로잡혔었다.

필자는 은퇴 후 6년여 전에 신북으로 귀촌한 외지인이다. 춘천으로 이주할 생각으로 춘천 전역을 발품으로 살펴본 후 삶의 터전으로 신북과 견줄만한 곳이 없다는 판단으로 이 곳에 정주하고 있다. 더욱 행운인 것은 신북 정주 후 춘천문화해설사로 선발되어 은퇴생활의 보람까지 만끽하고 있다는 것이다.

춘천문화해설사로 봉사하게 되면서 춘천 지역 역사와 문화 중 필자의 관심을 가장 많이 끈 것은 정주지, 신북의 맥국 도읍설이다. 그래서 외지인 그것도 춘천 역사의 문외한으로서 해설 지식을 높이기 위해 관련 학술 모임도 빠짐없이 챙겨 참석하고 관련 서적과 기록들도 나름대로 꼼꼼히 살펴보게 되었다.

그 결과, 맥국의 신북 도읍설은 존재하지 않는 당나라 가탐의 ‘고금군국지’를 근거로 한 ‘카더라’ 식의 주장이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를 비롯해 조선조의 각종 지리지에까지 널리 퍼져왔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맥국 신북 도읍설을 지지할 다른 한 축인 관련 유물이나 유적이 춘천 지역에서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신북 맥국설의 또 다른 문제점이기도 하다.

이런 와중에 필자는 봉의산 자락의 소양정 해설을 준비하면서 관련 기록과 문헌을 살펴보다가 뜻밖의 사실(史實)을 접할 수 있었다. 대부분 역사서와 지리서들이 맥국 터에 관해 ‘카더라’ 식의 전언을 기록하고 있는데 반해 조선 최고의 석학으로 알려진 다산 정약용은 ‘소양정 회고’에서 춘천의 낙랑 또는 한사군 도읍설을 ‘주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弓劉割據痕無跡‘(궁씨 유씨가 나누어 차지했으나 그 자취 전혀 없고) ’韓貊交爭竟可憐‘(한과 맥이 서로 다투었으니 끝내 가련할 뿐이네)이 바로 그것으로 ’전언‘이 아닌 ’주장‘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조카와 손자의 혼사를 위해 춘천을 두어 번 다녀간 것이 전부인 다산이지만 나름 근거를 가지고 낙랑 도읍설을 이같이 주장 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를 명쾌하게 뒷받침할 원전이나 근거를 밝히는 일은 이 분야의 문외한인 필자의 능력을 훨씬 벗어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맥국 연구 사학자들이나 전문가들은 신북을 근거지로 삼았던 부족이나 작은 국가를 대체로 맥국으로만 비정하면서 관련 유물과 유적도 맥국으로 한정하여 발굴코자 노력해온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신북에 있었던 부족이나 국체를 일부 주장처럼 예국으로 넓혀 보거나 다산의 주장처럼 낙랑을 포함한 한사군의 근거지로 비정해 보면 어떨까. 이렇게 하면 삼국시대 이전의 역사로 비정하는 신북 옛터의 존재 시기와도 맞아떨어지고 관련 유물과 유적의 발굴도 훨씬 더 용이해 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인돌 등의 유적과 발산, 맥뚝 등의 신북 지역 지명 그리고 여러 전설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신북을 포함한 춘천 지역 고도의 존재에 관해서는 사학계와 전문가들 사이에 이론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춘천 고도의 정체성에 관해서는 선택지를 더 많이 열어두고 유물과 유적을 발굴해 나가는 한편 관련 기록도 널리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게 이 분야 문외한의 소박한 생각이자 제언이다.<박의서; 춘천문화해설사/전 안양대 교수>

http://www.chunsa.kr/news/articleView.html?idxno=620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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