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 작가가 우상인가?
작성자
박 의서
작성일
2024-08-07 07:55
조회
259
일제 강점기인 1930년대에 작품 활동을 한 김유정 선생은 춘천이 낳은 걸출한 천재 작가다. 그래서 춘천은 ‘김유정문학촌’을 조성해 그의 업적과 작품을 기리고 있다. 이런 연유로 경춘선 신남역은 전국 최초로 사람 이름을 딴 김유정역으로 개명되었고, 김유정 작가의 고향인 실레마을 사람들 역시 식당이나 카페 이름을 김유정 작가나 그의 작품 속 캐릭터인 유정, 만무방, 점순이, 실레 등을 이용해 작명함으로써 실레마을은 명실상부한 ‘김유정문학촌’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에 따라 ‘김유정문학촌’과 실레마을은 많은 관람객들을 불러들여 마을 주민들을 먹여 살리고 있으니 그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양지바르고 옴팍해 시루 같다는 의미의 토속어인 실레에서 비롯된 실레마을은 김유정 작가의 서른여 단편 중 열두 편의 배경이 된 마을로서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문학사에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특별한 장소다.
실레마을 배경의 김유정 작품들은 찢어지게 가난하던 1930년대 우리 농촌 생활 모습을 가감 없이 전달하고 있어 심훈의 ‘상록수’처럼 계몽적이지도 않고,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처럼 낭만적이지도 않다. 그래서 김유정 소설은 리얼리즘이다. 그러나 김유정은 당시 우리 현실을 참담하고 가슴 아픈 모습으로만 그리지는 않았다. ‘봄·봄’과 ‘동백꽃’에서 소작농과 마름의 갈등조차도 해학과 풍자로 그려내고 있을 정도다. 그래서 이런 문학성에 착안한 ‘세계PEN클럽’은 70년대 중반 이 클럽의 서울 대회를 개최하면서 김유정 문학의 해학을 대회 주제로 삼기도 했다.
문화관광해설사인 필자는 나름대로 실레마을 배경의 김유정 문학의 핵심코드를 세 가지로 정리해 해설해 왔다. 바로 소작농, 마름, 들병이가 그것들인데, 이들 코드는 열두 편의 실레 문학을 관통하는 주제들이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김유정의 농촌 문학이 심훈이나 이효석과 차별되는 것은 30년대 우리 농촌의 삶을 현실 그대로 묘사한 사실주의에 있다고 본다. 인제 등에서 농번기에 농사일을 돌보다가 농한기에는 아이 둘러업고 남편 앞세워 이웃 실레마을 주막에 입주해 막걸리 팔아 연명하면서 경우에 따라서는 몸까지 내주어야 했던 들병이의 처절한 삶을 향해 돌을 던질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런 모습은 30년대 당시 우리 농촌 사람들이 헤쳐나와야 했던 처절한 삶의 한 단면이었음을 우리 모두 공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김유정문학촌’ 조성과 운영을 통해 김유정 작가의 업적과 작품을 기리고자 하는 것이지, 북한의 독재자처럼 그의 인간성을 미화하거나 사실을 왜곡하고자 하는 것이 아님을 직시하여야 한다. 김유정 작가는 불과 3년여 사이에 서른 편이 넘는 작품을 저술함으로써 그의 천재성을 발휘했다. 하지만, 조실부모하고 이로 인해 가세가 급격히 기울게 되면서 서른도 채 넘기지 못한 그의 생애는 불운하기 짝이 없는 삶으로 전락하였다. 그래서 명창이자 기생이기도 했던 박록주를 지독하게 짝사랑하는 등 애정결핍 행각을 이어왔음이 그의 작품 속에도 잘 스며들어 있다.
김유정 문학을 관람객들에게 잘 설명하기 위해서는 김유정의 박록주에 대한 짝사랑을 요즘 말로 스토커에 비유해 이해를 돕는다든지, 일종의 필요악이었던 들병이의 매매춘까지도 언급해야 할 경우가 종종 생기게 된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스토커라는 비유나 들병이의 매매춘 사실에 관한 언급 자체를 터부시하거나, 나아가 이런 사실을 왜곡하고 감추고자 하는 일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고자 하는 어리석음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그리고 주어진 매뉴얼을 앵무새처럼 외워서 읊기만 하는 해설이라면 그 해설은 이미 해설로서의 입지와 그 존재 가치를 상실하고 있는 것이다.
문학은 신학, 철학, 윤리 등이 커버할 수 없는 삶의 영역을 적나라하게 다루어 인류 발전에 이바지해오고 있다. 김유정 선생 역시 문학을 통해 아내 팔이와 매매춘을 포함한 30년대 우리의 삶을 가감 없이 그려냄으로써 우리 문학사에 금자탑을 쌓은 불세출의 작가다.
그리고 이러한 김유정 작품을 있는 그대로 해석하고 해설하는 일은 결코 김유정 작품이나 김유정 선생의 인격, 나아가 ‘김유정문학촌’을 폄훼하는 일이 결코 아닌 것이다. 아울러 춘천 시민 모두의 소중한 자산인 ‘김유정문학촌’은 그곳에서 일하고 있는 몇몇 임직원의 전유물도 아니거니와 ‘김유정문학촌’을 폄훼할 이유와 권리 역시 시민 어느 누구에게도 부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박 의서/춘천시 문화관광해설사/전 안양대 교수
양지바르고 옴팍해 시루 같다는 의미의 토속어인 실레에서 비롯된 실레마을은 김유정 작가의 서른여 단편 중 열두 편의 배경이 된 마을로서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문학사에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특별한 장소다.
실레마을 배경의 김유정 작품들은 찢어지게 가난하던 1930년대 우리 농촌 생활 모습을 가감 없이 전달하고 있어 심훈의 ‘상록수’처럼 계몽적이지도 않고,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처럼 낭만적이지도 않다. 그래서 김유정 소설은 리얼리즘이다. 그러나 김유정은 당시 우리 현실을 참담하고 가슴 아픈 모습으로만 그리지는 않았다. ‘봄·봄’과 ‘동백꽃’에서 소작농과 마름의 갈등조차도 해학과 풍자로 그려내고 있을 정도다. 그래서 이런 문학성에 착안한 ‘세계PEN클럽’은 70년대 중반 이 클럽의 서울 대회를 개최하면서 김유정 문학의 해학을 대회 주제로 삼기도 했다.
문화관광해설사인 필자는 나름대로 실레마을 배경의 김유정 문학의 핵심코드를 세 가지로 정리해 해설해 왔다. 바로 소작농, 마름, 들병이가 그것들인데, 이들 코드는 열두 편의 실레 문학을 관통하는 주제들이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김유정의 농촌 문학이 심훈이나 이효석과 차별되는 것은 30년대 우리 농촌의 삶을 현실 그대로 묘사한 사실주의에 있다고 본다. 인제 등에서 농번기에 농사일을 돌보다가 농한기에는 아이 둘러업고 남편 앞세워 이웃 실레마을 주막에 입주해 막걸리 팔아 연명하면서 경우에 따라서는 몸까지 내주어야 했던 들병이의 처절한 삶을 향해 돌을 던질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런 모습은 30년대 당시 우리 농촌 사람들이 헤쳐나와야 했던 처절한 삶의 한 단면이었음을 우리 모두 공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김유정문학촌’ 조성과 운영을 통해 김유정 작가의 업적과 작품을 기리고자 하는 것이지, 북한의 독재자처럼 그의 인간성을 미화하거나 사실을 왜곡하고자 하는 것이 아님을 직시하여야 한다. 김유정 작가는 불과 3년여 사이에 서른 편이 넘는 작품을 저술함으로써 그의 천재성을 발휘했다. 하지만, 조실부모하고 이로 인해 가세가 급격히 기울게 되면서 서른도 채 넘기지 못한 그의 생애는 불운하기 짝이 없는 삶으로 전락하였다. 그래서 명창이자 기생이기도 했던 박록주를 지독하게 짝사랑하는 등 애정결핍 행각을 이어왔음이 그의 작품 속에도 잘 스며들어 있다.
김유정 문학을 관람객들에게 잘 설명하기 위해서는 김유정의 박록주에 대한 짝사랑을 요즘 말로 스토커에 비유해 이해를 돕는다든지, 일종의 필요악이었던 들병이의 매매춘까지도 언급해야 할 경우가 종종 생기게 된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스토커라는 비유나 들병이의 매매춘 사실에 관한 언급 자체를 터부시하거나, 나아가 이런 사실을 왜곡하고 감추고자 하는 일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고자 하는 어리석음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그리고 주어진 매뉴얼을 앵무새처럼 외워서 읊기만 하는 해설이라면 그 해설은 이미 해설로서의 입지와 그 존재 가치를 상실하고 있는 것이다.
문학은 신학, 철학, 윤리 등이 커버할 수 없는 삶의 영역을 적나라하게 다루어 인류 발전에 이바지해오고 있다. 김유정 선생 역시 문학을 통해 아내 팔이와 매매춘을 포함한 30년대 우리의 삶을 가감 없이 그려냄으로써 우리 문학사에 금자탑을 쌓은 불세출의 작가다.
그리고 이러한 김유정 작품을 있는 그대로 해석하고 해설하는 일은 결코 김유정 작품이나 김유정 선생의 인격, 나아가 ‘김유정문학촌’을 폄훼하는 일이 결코 아닌 것이다. 아울러 춘천 시민 모두의 소중한 자산인 ‘김유정문학촌’은 그곳에서 일하고 있는 몇몇 임직원의 전유물도 아니거니와 ‘김유정문학촌’을 폄훼할 이유와 권리 역시 시민 어느 누구에게도 부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박 의서/춘천시 문화관광해설사/전 안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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