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아궁이

방 한 칸도 없이 서울 생활하던 직장 초년 시절. 이문동 외국어대학 동쪽 작은 구릉으로 연결되는 언덕에는 우체부 부부가 운영하는 세탁소가 있었고 청년은 이집의 작은 방에 전세로 입주하여 광화문 근처 사무실까지 출근하고 있었다. 7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연탄아궁이가 유일한 난방 수단이어서 연탄불을 꺼트리지 않고 온기를 유지하는 것은 매우 지난하고 번거로운 일과였다. 그런데 집주인 아주머니는 오밤중에도 일어나 아궁이의 연탄불을 갈아주는 번거로움을 전세살이 내내 감당해 주었었다.
이 좁은 방에 청년의 동생까지 합류해 살다가 결혼하게 되면서 이 고마운 아주머니는 동생의 결혼식까지도 와주었었다. 이런 고마운 아주머니와는 어찌어찌하다가 연락이 끊겨 세월이 지난 후 청년이 다시 찾은 이문동 고갯길은 아파트촌으로 변해 버려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당시만 해도 전라도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 남아있던 시절이었지만, 부부 모두 전라도 출신인 우체부와 세탁소 아주머니는 그야말로 법 없이도 살아갈 수 있을 정도로 선한 분들이었다.
이 시절 고단하게 지내던 먼 친척 아저씨인 청년을 뒷바라지 하겠다며 상경해 있던 고향의 외 조카뻘 아가씨와도 한 동안 취식을 같이 했었는데 그 아가씨와도 연락이 끊긴 것은 물론 생존 여부조차 알고 있지 못한 채 무상한 세월 탓만 하고 있는 늙은이 신세다.
박 의서 박 의서 · 2026-03-05 11:22 · Views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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