틸카라의 푸카라Pucara de Tilcara와 살타Salta 초원의 승마

작성자
박 의서
작성일
2023-02-18 19:36
조회
152
틸카라의 푸카라Pucara de Tilcara

24일차 : 1월 9일

아침에 일어나니 일곱 시다. 남미 여행 중 비교적 잘 잔 하루다. 보통 새벽에 한 번 깨면 뒤척이다 다시 잠이 들어 깨어나면 아침 여섯시쯤 일어나는 게 내 수면 습관이기 때문이다. 호텔 체크아웃을 위해 짐을 대충 챙겨 놓고 아침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간다. 식당에서는 필립이 혼자 식사를 하고 있다. 어제 일행 모두가 푸카라 투어Pucara tour를 안 한다고 했을 때 필립만이 가겠다고 했었다. 혼자가기 때문에 택시를 불러서 가야한단다. 일행은 모두 아침 10시 반에 모이기로 했으니 시간이 여유로워 필립한테 나도 같이 가자고 한다. 필립도 물론 좋다고 하고.

둘이는 택시를 불러 타고 이웃 타운인 우퀴아Uquia 를 거쳐 푸카라Pucara까지 갔다. 택시에는 이미 현지인 두 명이 타고 있어 합승을 했다. 우리가 푸카라를 돌아볼 시간은 30분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택시를 대기시킨다. 푸카라는 의외로 경치가 빼어난 곳이었다. 푸카라 공원 안에는 사람의 키를 넘는 선인장들이 즐비하게 서 있어 매우 이국적인 아름다움을 연출하고 있다. 이곳은 아름다운 선인장 군락지로도 유명하지만 실은 선사 시대의 주거지로 더 유명한 곳이다. 공원 안에는 돌로 된 움집터들을 복원해 놓고 있었다. 어제 저녁 먹으면서 틸카라Tilcara라는 이 볼품없는 작은 타운에 웬 백팩커를 포함한 여행자들이 이렇게 많이 몰려와 있을까 하고 궁금해 했는데 바로 이런 빼어난 경치와 유적이 있기 때문임을 비로소 알았다.

급한 걸음으로 공원 관광과 사진 촬영을 끝낸 필립과 나는 대기하고 있는 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일행은 모두 떠날 채비를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은 정확히 10시 30분. 다행이다.

미니버스에 올라 한 30분쯤 달렸을까? 푸르마마르카Purmamarca 라는 타운에 도착해 차를 세우고 로스 콜로라도스Los Colorados 산책을 시작한다. 그런데 이 타운 참으로 예쁘다. 나중에 알고 보니 타운 전체가 유네스코 지정 자연유산이란다. 여기야 말로 카메라를 들이대면 그대로 한 편의 서부영화가 제작될 것 같다. 여기서 일행은 뿔뿔이 흩어져 아래 동네인 타운에서 만나기로 하고 헤어진다. 따로 떨어진 나는 타운의 전통시장을 돌아본 후 샌드위치 가게에서 샌드위치 밀라네제sandwich milanese를 한 개 시켜서 일행이 모이기로 한 약속장소로 가다가 한국 여고생과 마주쳤다. 얼마나 반갑던지. 이 학생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주재 근무 중인 부모님을 따라 그곳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다고 했는데 현지의 국경일을 맞아 이곳까지 여행을 왔다고 했다.

일행과 다시 만나 한 시간 이상을 이곳에서 머문 우리는 살타Salta를 향해 버스를 타고 질주한다. 길가의 원시적인 모습의 강가에는 주말을 맞아 많은 사람들이 들놀이를 나와 있다, 텐트를 친 사람들도 있고, 철엽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 물살 빠른 냇물에서 미역 감는 사람들도 있고. 우리의 5, 60년대를 되돌아보는 듯해 향수에 잠기게 하는 풍경들이다.

살타가 가까워지자 초록 색깔이 풍요로워 진다. 그동안 3천 미터 이상의 고지에서만 여행하다가 해발 고도가 2천 미터 이하로 떨어진 탓이다. 드디어 어드벤쳐adventure에서 백 투 노멀back to normal 로 돌아온 것이다. 살 것 같다.

창밖으로 보이는 아르헨티나 북부의 모습은 풍요롭기 그지없다. 특히 볼리비아, 페루의 그 것에 비교하면 천지 차이다. 광활한 들판에는 담배와 사탕수수 밭이 드넓게 펼쳐져 있는데 특히 이곳의 사탕수수는 주로 펄프용이란다.

살타는 아름답고 조용한 도시다. 지진 피해를 줄이기 위해 건물들도 모두 나지막하게 지어져 있어 한 결 같이 예쁜 모습들이다. 우리가 묵을 호텔도 시내 중심가에 있지만 쾌적하고 조용한 분위기다. IT환경도 괜찮아 호텔 안에서 인터넷이 모처럼 연결되어 서울 소식을 접한다.

우리 일행은 여덟시에 모여 스테이크 하우스steak house로 저녁을 먹으러 간다. 이토록 늦은 시간인데도 우리가 첫 손님이다. 아홉시가 넘어서야 사람들이 몰려오더니 이내 식당이 꽉 찬다. 한 낮이 몹시 더워 시에스타siesta를 즐기던 이탈리아, 포르투갈, 스페인 등 남부 유럽의 라틴 문화의 정수를 그대로 받아들인 모습이다. 뜨거운 날씨의 한 낮에 와인을 곁들여 식사를 하면 자연스레 낮잠에 떨어지게 된다. 저녁 역시 늦게 떨어지는 태양을 피해 늦게 시작해서 밤이 이슥하도록 왁자지껄하게 즐기는 게 라틴Latin 사람들의 식사 습관이다. 그래서 그런지 라틴 사람들의 삶은 늘 즐겁고 건강하다.

스테이크 하우스는 음식을 맛있게 하는 집이다. 라틴 풍의 인테리어Latin interior도 인상적이고. 특히 천정이 높아 쾌적하다. 더운 지방들은 방한을 위한 보온에 신경 쓸 필요가 없기 때문에 천정이 높아 쾌적한 것이 특징인데 특히 라틴 사람들의 주거 문화가 대표적이다.

우리 일행은 칭용의 추천대로 스테이크를 모두 시켰는데 어마어마하게 큰 스테이크가 나왔다. 미디엄 레어medium rare로 시켰더니 고기가 아주 맛있다. 오늘도 칭용과 로빈이 레드와인을 각각 한 병씩 시켜서 나누어 먹는다. 와인을 병째로 시키는 것을 내가 먼저 시작했더니 이후 저녁마다 모두 와인을 한 두병씩 시켜 나누어 먹게 되었다. 서양 사람들은 정식 디너dinner가 아닌 간단한 식사에서는 와인을 주로 잔으로 시켜먹는 게 습관이다. 살타 산 와인도 맛이 참 좋다. 매리앤은 남은 인생을 페루 농부와 결혼하여 아만타니 섬에서 편안히 살겠다는 얘기를 입버릇처럼 되뇌인다. 이러다 정말 말이 씨가 되어 매리앤이 아만타니 섬에서 살 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열시 반이나 되어 식사를 마친 일행은 비가 오는 탓인지 뭔가 아쉬워 술 한 잔 더하기로 한다. 이웃 한 바bar로 자리를 옮겨 맥주와 와인을 시켜 놓고 또 잡담이 오간다. 술 취한 상태로 밤이 늦어지면 우리말 대화 내용도 잘 안 들리어 피곤해지는 나는 영어 대화 속에서 피곤함이 극치로 몰려온다. 피곤을 못 이겨 호텔로 돌아가 쉬겠다고 했더니 칭용과 매리앤이 적극 말려 하는 수 없이 주저앉는다. 그러나 칭용이 시킨 살타 산 흑맥주를 더 마시다가 결국은 혼자서 일찍 자릴 떠 호텔로 돌아왔다. 오늘도 참 기분 좋게 저녁을 즐긴 날이다. 내일은 아침 아홉시 반에 모두 승마를 같이 가기로 했다. 오늘 저녁도 기분 좋게 잠에 빠져든다.

살타Salta 초원의 승마

25일차 : 1월 10일

귀국 때 뉴욕에서 서울까지 가는 아시아나 비행기의 좌석 확보 때문에 뉴욕에 전화를 했다. 전 직장의 후배들인 지사장과 부장 모두 자리에 없단다. 현지 직원이 부장의 핸드폰번호를 알려줘 전화했더니 포워딩 메시지forwarding message가 나와 다시 사무실로 전화한다.

그나저나 내 핸드폰은 왜 신호가 떨어지지 않는 거야. 볼리비아 투어 내내 핸드폰의 시그널이 잡히지 않아 문제다. 하긴 전화국 부스를 이용해 전화를 하니 요금이 훨씬 싸서 좋긴 하다. 사무실의 현지 직원에게 서울 돌아가는 아시아나 비행기 자리 좀 잡아달라는 메시지를 후배에게 전해달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호텔로 돌아와 원고 정리하고 있는데 뉴욕의 후배한테 전화가 왔다. 그래서 스탠바이 티켓에 관한 사정을 자초지종 얘기하고 도움을 청한다. 다행히 예약 당일 서울 가는 비행기 좌석이 여유가 있는 것 같단다. 어찌되었건 서울에는 잘 돌아갈 수 있어야 할 텐데 걱정이 크게 앞선다.

아침 아홉시 반에 여행사가 호텔로 차를 보내와 두 대에 분승한다. 글쎄. 처음 해보는 승마인데 잘 할 수 있을 런지. 서양 애들한테 큰소리는 쳐 놓았지만 걱정이 태산 같다. 터프 가이tuff guy가 운전하는 작은 승용차를 타고 살타 교외의 산 로렌조San Lorenzo 라는 아주 아름다운 마을에 닿았다, 집과 정원이 모두 훌륭한 것으로 보아 매우 부촌인 것 같다. 나중에 가이드에게 들으니 살타Salta에서 가장 부촌이란다. 집 가격을 물으니 미화 20만 불 정도란다. 우리 돈 2억 원 정도인 집값 만으로만 봐선 이런 곳에 와 살면 사람답게 사는 모습일 것 같다.

마을의 승마장에 도착해 마구와 말을 배정받는다. 내가 초짜라고 했더니 걱정 말라며 일곱 마리 말 중 가장 순한 놈을 골라주는 것 같았다. 검은 말이었는데 이름도 검다는 뜻의 에스크로Escro라고 했다. 승마장 가이드는 초보자인 내게 몇 가지 간단한 기초 지식을 알려준다. 정지, 출발, 방향틀기 뭐 이런 정도다. 말들이 자기의 리드lead를 따를 것이기 때문에 걱정하지 말란다. 그러나 낙마 사고를 많이 전해들은 나로서는 여전히 불안하다. 그러나 승마 가이드의 말을 믿고 따를 수밖에.

막상 말에 올라 얼마를 따라가 보니 승마 역시 균형 잡는 운동의 하나라는 느낌이 온 몸으로 느껴져 온다. 균형 잡기라면 내가 어느 정도 자신이 있지! 실제로 승마 세 시간 동안 나는 한 번도 선두 그룹을 놓치지 않았다. 처음 하는 승마치곤 너무 잘 한다며 일행 모두가 나를 추켜세워 준다.

초원의 승마장은 숨이 막히는breathtaking 경치 그 자체였다. 세 시간 동안 미화 30불 정도의 비용을 지불하고 정말 환상적인 시간을 가졌다. 승마도 승마지만 경치가 기가 막히다. 찍은 사진을 보니 내 승마 모습이 너무 자연스러워 오랫동안 승마를 해온 사람 같다. 실제로 나는 승마 내내 선두를 유지해 다운힐 바이킹down hill biking 때 한 번 놀랜 일행들이 또 한 번 놀랜다. 정말 꿈같은 세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점심은 승마장 근처에서 스테이크로 먹는다. 시골이지만 스테이크 값이 싸고 맛있다.

승마에서 돌아와 샤워를 하는데 항문 언저리가 따갑다. 말안장에 비벼져 살갗에 흠집이 난 줄도 모르고 승마를 한 탓이다. 어쩌면 지나치게 긴장한 탓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승마가 에너지 소모량이 이처럼 엄청난 운동인지도 처음 알았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승마로 인한 에너지 소모가 간단치 않단다. 그것도 모르고 난 당초 6시간짜리 승마를 하자고 했었다. 피곤에 지친 나는 호텔에 돌아와 한 숨을 자고도 여전히 피로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저녁에 민속공연 겸 저녁을 같이 하기로 했지만 피곤이 겹쳐 영 내키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억지로 따라 나선다.

아르헨티나 민속공연과 춤은 재미있었지만 피곤에 찌든 나는 와인 한잔도 제대로 못 마시고 겨우 견디다가 12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자릴 뜬다. 그런데 12시가 넘은 시간인데도 우리가 가장 먼저 일어나게 되어 오히려 무안할 지경이다. 내일 아침 일곱 시에 와이너리 투어winery tour 버스가 오는 것으로 되어 있어 호텔에 돌아오자마자 짐도 못 챙기고 바로 잠에 떨어진다.
전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