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가 체 게바라Che Guevara로 거듭나게 한 모터사이클 투어
작성자
박 의서
작성일
2023-02-18 19:36
조회
129
모터사이클 로망Motor Cycle Roman과 혁명가 체 게바라Che Guevara
28일차 : 1월 13일
오늘은 남미 혁명의 풍운아 체 게바라Che Guevara의 고향 동네를 방문하기로 한 날이다. 체 게바라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로 일했었다고 했다. 알타 그라시아Alta Gracia라는 마을은 코르도바에서 한 시간 반 정도 떨어져 있는 아름답고 조용한 동네다. 이곳에 있는 예수회 수도원과 호수는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분위기다. 어찌 이런 동네에서 체 게바라 같은 반항적 혁명가가 나올 수 있었을까?
체 게바라는 실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나 부모님을 따라 이사를 많이 다녔다고 했다. 체 게바라가 소년기를 보낸 알타 그라시아의 거리는 매우 아름답고 조용한 곳이다. 집은 세를 얻어 살았다고 했는데 평범한 중산층의 집이었다. 그동안 체 게바라에 관한 이렇다 할 책 한 권 읽은 게 없는데 이참에 서울 돌아가면 체 게바라에 관한 책을 구해 읽어 봐야겠다.
마을 구경을 끝내니 네 시가 되었고 우리는 버스를 타고 코르도바로 돌아왔다. 밤 10시 버스를 탈 때까지 시간이 남아 쇼핑센터에 가서 간단한 저녁을 먹고 쉬엄쉬엄 걸어서 호텔로 돌아오니 아홉 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다. 호텔 스토리지에 있던 짐들을 챙긴 후 걸어서 버스 터미널로 향한다. 어찌 보면 배낭을 걸머메고 이동하는 모습이 꼭 거지 떼들 같다. 이동 중에 서울의 출판사 사장한테 문자가 왔다. 서울 시간으로 오늘 아프리카 여행기가 출간된다고.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드디어 책이 나오는 구나. 책이 궁금하다. 남미 여행 마치고 서울 도착하면 아마도 책이 집에 배달되어 있을 것 같다.
에바 페론Eva Peron의 무덤
29일차 : 1월 14일
아르헨티나는 땅덩어리가 길어 장거리 행 버스가 많고 따라서 버스에는 화장실, 리클라이닝 의자reclining chair, 에어컨, TV 등이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다. 밤새 달린 버스는 아침 여덟시 경에 우리 일행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내려놓았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버스 터미널은 웬만한 도시의 비행장만큼 큰 규모다. 내리고 타는 곳의 층이 다른 정도니까. 전세 버스가 우리 일행을 기다렸다가 호텔로 바로 안내한다. 아침 이른 시간이라 체크인은 못하고 호텔에서 아침식사만 한 우리는 바로 버스에 다시 올라 시내 투어에 나선다. 시내 투어는 알렉산드리아Alexandria라는 아가씨가 맡았는데 준비가 철저하다. 지도와 그림을 준비해서 핸드백의 클리어 파일clear file에 넣어두었다가 해설 시 필요한 때마다 시각적 설명용으로 꺼내서 활용한다.
이탈리아 이민자들을 중심으로 유럽 이민자들이 처음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정착한 곳인 보카La Bocca는 일종의 판자촌인데 양철로 지어진 건물들을 울긋불긋하게 페인팅 해 놓은 모습이 인상적이다. 길거리 여기저기에서는 탱고tango를 즐기는 사람들을 쉽게 마주칠 수 있고 길모퉁이마다 길거리 예술가들도 자유로운 영혼의 모습으로 활동하고 있어 마치 우리의 전통시장처럼 에너지가 흘러넘치고 있다.
이민 시절의 애환이 서려있는 보카의 여운을 뒤로 하고 알렉산드리아의 안내를 따라 우리 일행은 레콜레타Recoleta묘역의 에바 페론Eva Peron무덤으로 향한다. 이 묘역은 이탈리아 밀라노Italia Milano의 묘역을 본 따서 조성했다고 했는데 3년 반이나 밀라노에 주재한 경험이 있는 나는 정작 밀라노 묘역은 한 번도 들러 본 적이 없다. 돌로 조성된 에바 페론의 무덤에는 꽃 한 송이가 놓여 있는 것을 빼놓고는 여느 묘역과 크게 다를 바 없는 평범한 모습의 묘역이다. 그렇지만 에비타Evita라는 오페라까지 제작되어 그 인기가 식을 줄 모르는 그녀의 생전은 물론 사후의 명성 때문에 레콜레타 묘역은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들르는 여행자들의 필수 코스가 되었다.
호텔에 돌아와 정식으로 첵크인 한 후 간단한 샤워로 하루의 피로를 씻는다. 샤워 후 항공사에 스탠바이 상황을 알아보는 전화를 하느라 일행과 점심 합류 시간이 늦었다. 하는 수 없이 호텔 방 안에서 라면을 끓여 먹었는데 오랜 만에 먹는 라면 맛이 환상이다. 이런 때를 대비해서 전기 코드만 꽂으면 라면을 끓여 먹을 수 있는 전기 버너burner를 챙겨 왔는데 참 잘 한 것 같다. 모처럼 시간이 여유로워 서울 돌아갈 짐을 미리 챙기고 전화기, 카메라 모두 충전시키고 랩탑 컴퓨터도 충전하면서 이글을 정리하고 있다.
오늘은 8시에 다 같이 저녁 먹고 내일은 당일치기로 우루과이 관광하고 저녁은 탱고 쇼 보는 일정이 남아있다. 그리고 모래 일요일은 새벽부터 일행이 출발하기 시작한다. 제발 비행기를 잘 탈 수 있어야 할 텐데... 현재로서는 오버 부킹over booking이라고는 하나 스탠바이가 나 혼자라서 여전히 희망적이긴 하다.
서울 갈 짐을 모두 챙겨 놓고 나니 당장이라도 서울로 돌아갈 것 같은 기분이다. 한 달이 마치 꿈같이 지나긴 했지만 그래도 마누라와 집이 그립다. 호텔에서 유료 인터넷을 시도했지만 연결이 되지 않는다. 로비에서 책 좀 보다 약속 시간이 되어 저녁 장소로 이동한다. 고급 식당이라고 해서 기대가 컸는데 고기 맛이 살타의 돈냐Donga 식당만 못하고 값만 비싸다. 칭용은 1kg 짜리 스테이크를 시켜놓고 절절맨다. 와인도 비싸기만 하고 맛은 별로다. 나중에 밥값을 지불하면서 계산 에피소드episode로 기분이 상했다. 우리 일행의 저녁 값 셈법은 그룹 전체의 계산서를 보고 알아서 자기가 먹은 몫만큼의 돈을 내는 식이다. 그런데 돈을 모두 걷은 후에 보니 모자란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누가 덜 낸 것인지를 파악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런데 뜻밖에 옆에 앉아있던 바네샤가 나보고 디저트 값을 냈느냐고 반문한다. 내 몫으로 38페소 냈다고 했더니 어째 디저트를 안 먹은 자기보다 싸게 나왔느냐고 따진다. 참 기분 나쁜 의심이다. 호텔 방으로 돌아와 음식 값이 모자란 이유를 곰곰 생각해 보니 칭용이 와인 값을 220페소가 아닌 120페소로 계산해서 나눈 탓인 걸 알았다. 아침에 식사하면서 바네샤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미안하단다. 그래도 의문이 풀리지 않는 눈치이기에 내가 먹은 스테이크 값이 50페소밖에 안된다고 했더니 그제 서야 이해했다는 눈치다.
탱고의 도시 부에노스 에이레스Buenos Aires
30일차 : 1월 15일
아침 식사 후 필립과 함께 우루과이로 가는 페리로 향한다. 겨우 겨우 찾아가긴 했는데 가서 승선권을 살려고 보니 여권을 호텔에 두고 온 게 비로소 생각난다. 안 그래도 가이드, 에일린Eileen이 여권을 챙겨야 한다고 아침 식사 자리에서 얘기했을 때 난 당연히 여권을 소지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제 저녁에 호텔의 프런트 금고에 물건을 맡기면서 여권까지 같이 맡긴 것을 깜빡 한 것이다. 이제 이런 일로 그 어느 누구를 탓해서도 안 되는 나이다.
하는 수 없이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모처럼 공중전화에서 서울의 아내와 통화를 했다. 아프리카 여행기가 나와 집에 도착했는데 여기저기 오자가 발견된단다. 출판사 사장은 교정을 철저히 봤다고 하더니만. 우리 집사람한테 교정 기회를 한 번 더 주었어도 이런 일은 없었으련만. 서점에서 팔릴 책인데 오자투성이라니 마음이 많이 불편해온다. 어쨌거나 책이 나온 것으로 감사해야지.
뉴욕의 후배에게도 전화를 해보니 아시아나 항공편으로 서울 가는 것은 좌석이 충분해 별 문제가 없단다. 다행이다. 그러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발 아메리칸 에어American Air사정이 어떨는지. 밖에 비는 오고 그래서 호텔 방에 앉아 원고를 정리하고 있는 중이다.
오후에는 호텔 인근의 쇼핑가를 둘러본다. 물건들이 풍요롭다. 특히 가죽 제품이 넘치고 있었는데 모두 싸고 좋은 품질인 것 같다. 상인들이 내가 한국 사람임을 알아보고 우리 말 몇 마디씩을 건네 온다. 그동안 한국 사람이 꽤 많이 다녀간 모양이다. 참 대단한 대한민국이다. 비행기로 서른 시간은 걸리는 이곳에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다녀갔으면 우리말로 인사를 해올까. 쇼핑가를 둘러보다 보석 집에 들러 아르헨티나 산 작은 돌 하나를 흥정하다가 가격이 맞지 않아 돌아섰다. 그런데 웬만하면 잡을 줄 알았는데 잡지 않는다. 워낙 싼 물건을 흥정해서 그렇겠지! 돌은 참 예쁘던데. 이따가 다시 가봐야 하나. 아님 귀국 때 공항 면세점에서 하나 구입하나.
탱고 쇼Tango Show 로 대미를 장식한 남미 종주의 피날레Finale
저녁 탱고 쇼Tango Show 시간이 여덟 시에서 일곱 시 반으로 변경되어 우루과이Uruguay로 간 바네샤 등을 뺀 일행 여섯 명은 먼저 쇼 장으로 간다. 버스는 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 시내의 호텔들을 돌면서 관람객들을 모아 태운다. 쇼 장에 도착하니 상당 수 사람들이 이미 와 있어 홀이 꽉 차 있다. 자리를 잡고 음료 한 잔 하고 있으려니 바네샤 일행이 택시를 타고 도착한다. 바네샤로서는 브에노스아이레스 여행이 이번이 두 번째인데 먼저 번 여행 중에도 이곳의 탱고 쇼 장에 왔었단다. 인근에 탱고 쇼 장이 많이 보이던데 아마 이 곳이 꽤 유명한 곳인 모양이다.
두 사람 당 한 병의 와인과 함께 제공된 저녁 식사는 기대보다는 매우 훌륭한 것이었다. 어제 저녁 거금을 주고 고급 식당에서 먹은 스테이크steak보다 훨씬 더 나은 식사였다고 다들 이구동성이다. 열 시가 넘어 식사가 끝나자 공연이 시작된다. 아르헨티나의 탱고는 그림같이 아름답다. 탱고 댄스tango dance도 아름답지만 머리가 하얀 중년의 중후한 연주로 듣는 탱고 음악은 참으로 탁월하다. 피아노piano와 첼로cello가 각각 한 대, 바이올린violin 두 대 그리고 작은 손풍금인 반도네온bandoneon 네 대의 앙상블은 자신도 모르게 어깨를 들썩이게 할 정도로 신이 난다. 지휘자도 없이 이렇게 멋있는 음악이 나올 수 있다는 게 경이롭기까지 하다.
탱고 쇼 중간 중간에 4인조의 남미 전통 악기 연주도 있었는데 ‘엘 콘도 파사’ 등의 남미 음악의 깊이가 그 동안 들어본 연주 중 최고의 수준이었다.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어찌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을까. 특히 머리 하얀 연주자들의 연륜이 음악의 선율에 그대로 묻어 나와 커다란 감동을 준다. 반도네온bandoneon 연주자 네 명 중 두 명이 노인이고 나머지 두 명은 젊은이였는데 노인 두 명이 악보를 보며 연주하는 모습이 참으로 진지해 보인다. 반면 젊은이 둘은 악보를 외워 연주하는 모습으로 매우 여유로워 보인다. 몸치인 나지만 공연 내내 탱고 음악에 취해 몸을 가만히 놓아둘 수가 없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반도네온bandoneon은 탱고 음악의 영혼이고 탱고 댄스tango dance는 반도네온bandoneon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만들어진 춤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라고 한다.
탱고 댄서tango dancer들의 수준도 가히 예술의 경지이다. 본래 탱고는 유럽 이민자들이 향수를 달래기 위해 현지의 창녀들과 춘 것이 효시라고 들었다. 그 전에는 남자 혼자 춘 춤이었고. 남미여행의 마지막 대미가 정말 환상이다. 공연이 끝난 후 나는 이 연주자들의 탱고 CD와 남미 전통음악 CD를 각각 한 장씩 산다. 이 감동을 인천공항으로 마중 나올 아내와 딸에게 그대로 전해 주고 싶기 때문이다.
공연 관람 후 호텔로 돌아 온 우리는 서로 얼싸안고 이별을 아쉬워한다. 필립과 매리앤을 제외한 우리 일행은 내일 새벽부터 아침 사이 귀국하거나 다른 여행지로 떠나는 비행기를 타러 가기 때문이다. 한 달여를 밤낮으로 동고동락한 우리는 정말 많은 정이 들었다. 헤어진 후에도 모두 페이스북facebook으로 연결하자며 아쉬움을 달래면서 헤어진다.
28일차 : 1월 13일
오늘은 남미 혁명의 풍운아 체 게바라Che Guevara의 고향 동네를 방문하기로 한 날이다. 체 게바라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로 일했었다고 했다. 알타 그라시아Alta Gracia라는 마을은 코르도바에서 한 시간 반 정도 떨어져 있는 아름답고 조용한 동네다. 이곳에 있는 예수회 수도원과 호수는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분위기다. 어찌 이런 동네에서 체 게바라 같은 반항적 혁명가가 나올 수 있었을까?
체 게바라는 실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나 부모님을 따라 이사를 많이 다녔다고 했다. 체 게바라가 소년기를 보낸 알타 그라시아의 거리는 매우 아름답고 조용한 곳이다. 집은 세를 얻어 살았다고 했는데 평범한 중산층의 집이었다. 그동안 체 게바라에 관한 이렇다 할 책 한 권 읽은 게 없는데 이참에 서울 돌아가면 체 게바라에 관한 책을 구해 읽어 봐야겠다.
마을 구경을 끝내니 네 시가 되었고 우리는 버스를 타고 코르도바로 돌아왔다. 밤 10시 버스를 탈 때까지 시간이 남아 쇼핑센터에 가서 간단한 저녁을 먹고 쉬엄쉬엄 걸어서 호텔로 돌아오니 아홉 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다. 호텔 스토리지에 있던 짐들을 챙긴 후 걸어서 버스 터미널로 향한다. 어찌 보면 배낭을 걸머메고 이동하는 모습이 꼭 거지 떼들 같다. 이동 중에 서울의 출판사 사장한테 문자가 왔다. 서울 시간으로 오늘 아프리카 여행기가 출간된다고.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드디어 책이 나오는 구나. 책이 궁금하다. 남미 여행 마치고 서울 도착하면 아마도 책이 집에 배달되어 있을 것 같다.
에바 페론Eva Peron의 무덤
29일차 : 1월 14일
아르헨티나는 땅덩어리가 길어 장거리 행 버스가 많고 따라서 버스에는 화장실, 리클라이닝 의자reclining chair, 에어컨, TV 등이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다. 밤새 달린 버스는 아침 여덟시 경에 우리 일행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내려놓았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버스 터미널은 웬만한 도시의 비행장만큼 큰 규모다. 내리고 타는 곳의 층이 다른 정도니까. 전세 버스가 우리 일행을 기다렸다가 호텔로 바로 안내한다. 아침 이른 시간이라 체크인은 못하고 호텔에서 아침식사만 한 우리는 바로 버스에 다시 올라 시내 투어에 나선다. 시내 투어는 알렉산드리아Alexandria라는 아가씨가 맡았는데 준비가 철저하다. 지도와 그림을 준비해서 핸드백의 클리어 파일clear file에 넣어두었다가 해설 시 필요한 때마다 시각적 설명용으로 꺼내서 활용한다.
이탈리아 이민자들을 중심으로 유럽 이민자들이 처음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정착한 곳인 보카La Bocca는 일종의 판자촌인데 양철로 지어진 건물들을 울긋불긋하게 페인팅 해 놓은 모습이 인상적이다. 길거리 여기저기에서는 탱고tango를 즐기는 사람들을 쉽게 마주칠 수 있고 길모퉁이마다 길거리 예술가들도 자유로운 영혼의 모습으로 활동하고 있어 마치 우리의 전통시장처럼 에너지가 흘러넘치고 있다.
이민 시절의 애환이 서려있는 보카의 여운을 뒤로 하고 알렉산드리아의 안내를 따라 우리 일행은 레콜레타Recoleta묘역의 에바 페론Eva Peron무덤으로 향한다. 이 묘역은 이탈리아 밀라노Italia Milano의 묘역을 본 따서 조성했다고 했는데 3년 반이나 밀라노에 주재한 경험이 있는 나는 정작 밀라노 묘역은 한 번도 들러 본 적이 없다. 돌로 조성된 에바 페론의 무덤에는 꽃 한 송이가 놓여 있는 것을 빼놓고는 여느 묘역과 크게 다를 바 없는 평범한 모습의 묘역이다. 그렇지만 에비타Evita라는 오페라까지 제작되어 그 인기가 식을 줄 모르는 그녀의 생전은 물론 사후의 명성 때문에 레콜레타 묘역은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들르는 여행자들의 필수 코스가 되었다.
호텔에 돌아와 정식으로 첵크인 한 후 간단한 샤워로 하루의 피로를 씻는다. 샤워 후 항공사에 스탠바이 상황을 알아보는 전화를 하느라 일행과 점심 합류 시간이 늦었다. 하는 수 없이 호텔 방 안에서 라면을 끓여 먹었는데 오랜 만에 먹는 라면 맛이 환상이다. 이런 때를 대비해서 전기 코드만 꽂으면 라면을 끓여 먹을 수 있는 전기 버너burner를 챙겨 왔는데 참 잘 한 것 같다. 모처럼 시간이 여유로워 서울 돌아갈 짐을 미리 챙기고 전화기, 카메라 모두 충전시키고 랩탑 컴퓨터도 충전하면서 이글을 정리하고 있다.
오늘은 8시에 다 같이 저녁 먹고 내일은 당일치기로 우루과이 관광하고 저녁은 탱고 쇼 보는 일정이 남아있다. 그리고 모래 일요일은 새벽부터 일행이 출발하기 시작한다. 제발 비행기를 잘 탈 수 있어야 할 텐데... 현재로서는 오버 부킹over booking이라고는 하나 스탠바이가 나 혼자라서 여전히 희망적이긴 하다.
서울 갈 짐을 모두 챙겨 놓고 나니 당장이라도 서울로 돌아갈 것 같은 기분이다. 한 달이 마치 꿈같이 지나긴 했지만 그래도 마누라와 집이 그립다. 호텔에서 유료 인터넷을 시도했지만 연결이 되지 않는다. 로비에서 책 좀 보다 약속 시간이 되어 저녁 장소로 이동한다. 고급 식당이라고 해서 기대가 컸는데 고기 맛이 살타의 돈냐Donga 식당만 못하고 값만 비싸다. 칭용은 1kg 짜리 스테이크를 시켜놓고 절절맨다. 와인도 비싸기만 하고 맛은 별로다. 나중에 밥값을 지불하면서 계산 에피소드episode로 기분이 상했다. 우리 일행의 저녁 값 셈법은 그룹 전체의 계산서를 보고 알아서 자기가 먹은 몫만큼의 돈을 내는 식이다. 그런데 돈을 모두 걷은 후에 보니 모자란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누가 덜 낸 것인지를 파악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런데 뜻밖에 옆에 앉아있던 바네샤가 나보고 디저트 값을 냈느냐고 반문한다. 내 몫으로 38페소 냈다고 했더니 어째 디저트를 안 먹은 자기보다 싸게 나왔느냐고 따진다. 참 기분 나쁜 의심이다. 호텔 방으로 돌아와 음식 값이 모자란 이유를 곰곰 생각해 보니 칭용이 와인 값을 220페소가 아닌 120페소로 계산해서 나눈 탓인 걸 알았다. 아침에 식사하면서 바네샤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미안하단다. 그래도 의문이 풀리지 않는 눈치이기에 내가 먹은 스테이크 값이 50페소밖에 안된다고 했더니 그제 서야 이해했다는 눈치다.
탱고의 도시 부에노스 에이레스Buenos Aires
30일차 : 1월 15일
아침 식사 후 필립과 함께 우루과이로 가는 페리로 향한다. 겨우 겨우 찾아가긴 했는데 가서 승선권을 살려고 보니 여권을 호텔에 두고 온 게 비로소 생각난다. 안 그래도 가이드, 에일린Eileen이 여권을 챙겨야 한다고 아침 식사 자리에서 얘기했을 때 난 당연히 여권을 소지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제 저녁에 호텔의 프런트 금고에 물건을 맡기면서 여권까지 같이 맡긴 것을 깜빡 한 것이다. 이제 이런 일로 그 어느 누구를 탓해서도 안 되는 나이다.
하는 수 없이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모처럼 공중전화에서 서울의 아내와 통화를 했다. 아프리카 여행기가 나와 집에 도착했는데 여기저기 오자가 발견된단다. 출판사 사장은 교정을 철저히 봤다고 하더니만. 우리 집사람한테 교정 기회를 한 번 더 주었어도 이런 일은 없었으련만. 서점에서 팔릴 책인데 오자투성이라니 마음이 많이 불편해온다. 어쨌거나 책이 나온 것으로 감사해야지.
뉴욕의 후배에게도 전화를 해보니 아시아나 항공편으로 서울 가는 것은 좌석이 충분해 별 문제가 없단다. 다행이다. 그러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발 아메리칸 에어American Air사정이 어떨는지. 밖에 비는 오고 그래서 호텔 방에 앉아 원고를 정리하고 있는 중이다.
오후에는 호텔 인근의 쇼핑가를 둘러본다. 물건들이 풍요롭다. 특히 가죽 제품이 넘치고 있었는데 모두 싸고 좋은 품질인 것 같다. 상인들이 내가 한국 사람임을 알아보고 우리 말 몇 마디씩을 건네 온다. 그동안 한국 사람이 꽤 많이 다녀간 모양이다. 참 대단한 대한민국이다. 비행기로 서른 시간은 걸리는 이곳에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다녀갔으면 우리말로 인사를 해올까. 쇼핑가를 둘러보다 보석 집에 들러 아르헨티나 산 작은 돌 하나를 흥정하다가 가격이 맞지 않아 돌아섰다. 그런데 웬만하면 잡을 줄 알았는데 잡지 않는다. 워낙 싼 물건을 흥정해서 그렇겠지! 돌은 참 예쁘던데. 이따가 다시 가봐야 하나. 아님 귀국 때 공항 면세점에서 하나 구입하나.
탱고 쇼Tango Show 로 대미를 장식한 남미 종주의 피날레Finale
저녁 탱고 쇼Tango Show 시간이 여덟 시에서 일곱 시 반으로 변경되어 우루과이Uruguay로 간 바네샤 등을 뺀 일행 여섯 명은 먼저 쇼 장으로 간다. 버스는 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 시내의 호텔들을 돌면서 관람객들을 모아 태운다. 쇼 장에 도착하니 상당 수 사람들이 이미 와 있어 홀이 꽉 차 있다. 자리를 잡고 음료 한 잔 하고 있으려니 바네샤 일행이 택시를 타고 도착한다. 바네샤로서는 브에노스아이레스 여행이 이번이 두 번째인데 먼저 번 여행 중에도 이곳의 탱고 쇼 장에 왔었단다. 인근에 탱고 쇼 장이 많이 보이던데 아마 이 곳이 꽤 유명한 곳인 모양이다.
두 사람 당 한 병의 와인과 함께 제공된 저녁 식사는 기대보다는 매우 훌륭한 것이었다. 어제 저녁 거금을 주고 고급 식당에서 먹은 스테이크steak보다 훨씬 더 나은 식사였다고 다들 이구동성이다. 열 시가 넘어 식사가 끝나자 공연이 시작된다. 아르헨티나의 탱고는 그림같이 아름답다. 탱고 댄스tango dance도 아름답지만 머리가 하얀 중년의 중후한 연주로 듣는 탱고 음악은 참으로 탁월하다. 피아노piano와 첼로cello가 각각 한 대, 바이올린violin 두 대 그리고 작은 손풍금인 반도네온bandoneon 네 대의 앙상블은 자신도 모르게 어깨를 들썩이게 할 정도로 신이 난다. 지휘자도 없이 이렇게 멋있는 음악이 나올 수 있다는 게 경이롭기까지 하다.
탱고 쇼 중간 중간에 4인조의 남미 전통 악기 연주도 있었는데 ‘엘 콘도 파사’ 등의 남미 음악의 깊이가 그 동안 들어본 연주 중 최고의 수준이었다.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어찌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을까. 특히 머리 하얀 연주자들의 연륜이 음악의 선율에 그대로 묻어 나와 커다란 감동을 준다. 반도네온bandoneon 연주자 네 명 중 두 명이 노인이고 나머지 두 명은 젊은이였는데 노인 두 명이 악보를 보며 연주하는 모습이 참으로 진지해 보인다. 반면 젊은이 둘은 악보를 외워 연주하는 모습으로 매우 여유로워 보인다. 몸치인 나지만 공연 내내 탱고 음악에 취해 몸을 가만히 놓아둘 수가 없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반도네온bandoneon은 탱고 음악의 영혼이고 탱고 댄스tango dance는 반도네온bandoneon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만들어진 춤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라고 한다.
탱고 댄서tango dancer들의 수준도 가히 예술의 경지이다. 본래 탱고는 유럽 이민자들이 향수를 달래기 위해 현지의 창녀들과 춘 것이 효시라고 들었다. 그 전에는 남자 혼자 춘 춤이었고. 남미여행의 마지막 대미가 정말 환상이다. 공연이 끝난 후 나는 이 연주자들의 탱고 CD와 남미 전통음악 CD를 각각 한 장씩 산다. 이 감동을 인천공항으로 마중 나올 아내와 딸에게 그대로 전해 주고 싶기 때문이다.
공연 관람 후 호텔로 돌아 온 우리는 서로 얼싸안고 이별을 아쉬워한다. 필립과 매리앤을 제외한 우리 일행은 내일 새벽부터 아침 사이 귀국하거나 다른 여행지로 떠나는 비행기를 타러 가기 때문이다. 한 달여를 밤낮으로 동고동락한 우리는 정말 많은 정이 들었다. 헤어진 후에도 모두 페이스북facebook으로 연결하자며 아쉬움을 달래면서 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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